업황 무시한 '묻지마 투자', 석유화학 채권에서 대규모 손실 발생
기관투자가들은 2019년부터 2021년까지 석유화학 채권을 높은 가격에 지속적으로 매입했다. 이는 연초마다 밀려드는 퇴직연금 자금을 소진하기 위한 것으로, 업황을 고려하지 않은 고가 매입이 손실로 이어졌다.

최근 국내 금융기관들이 석유화학 회사채 투자에서 약 1,000억 원에 달하는 평가손실을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석유화학 업황 악화 경고에도 불구하고, 연초마다 밀려드는 퇴직연금 자금을 소화하기 위해 시세보다 높은 가격에 채권을 매입한 결과로 분석된다.
23일 한국자산평가 등 채권평가사에 따르면, LG화학, 롯데케미칼, 한화토탈에너지스, HD현대케미칼, 여천NCC, SK지오센트릭 등 6개사의 발행 공모채권 총 10조 6,000억 원 중 약 3조 5,000억 원에서 손실이 발생했다. 합산 평가손실은 약 950억 원으로, 평균 손실률은 2.7%에 달한다. 사모채까지 포함하면 총 손실 규모는 1,000억 원을 초과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가장 큰 손실은 2021년 이전에 발행된 채권에서 발생했다. 이는 석유화학 업황 악화가 본격화되기 직전 시점으로, 기관투자가들이 업황 변동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중장기 채권에 투자한 결과로 분석된다. 한 대형 금융회사 자산운용역은 "기관들이 석유화학업계의 큰 변동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중장기 채권에 '묻지마' 식으로 투자해 벤치마크를 웃도는 손실을 자초했다"고 지적했다.
2019년 이후 석유화학 업계에는 여러 악화 신호가 있었다. 국내 기초 화학 제품의 수익성을 반영하는 '에틸렌 수출 가격-나프타 수입 가격'은 2018년 1월 톤당 700달러에서 2021년 6월 350달러로 절반 수준으로 감소했다. 또한, 최대 수출국인 중국의 수입 비중도 2019년 한때 전체의 50%를 넘었으나, 최근 30%대로 하락했다. 이러한 지표들은 석유화학 산업의 다운사이클 진입을 경고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기관투자가들은 2019년부터 2021년까지 석유화학 채권을 높은 가격에 지속적으로 매입했다. 이는 연초마다 밀려드는 퇴직연금 자금을 소진하기 위한 것으로, 업황을 고려하지 않은 고가 매입이 손실로 이어졌다. 실제로 롯데케미칼과 한화토탈에너지스 등 주요 석유화학 기업의 채권은 작년부터 동일한 신용등급의 다른 채권과 비교해 뚜렷한 가격 하락세를 보였다.